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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작가 <미시마 유끼오> 이야기

작성자
김준태
등록일
2012-08-14
조회수
2117

일본 작가 <미시마 유끼오> 이야기

김준태(5・18기념재단 이사장)

 

금각사

◇ 일본 교토에 소재한 사찰 금각사 전경. 미시마 유끼오의 소설 [금각사]의 소재가 되었는데

이 작품이  두 차례에 걸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다.     

 

     최근 일본의 교토와 오키나와를 다녀왔는데 버릴 수 없는 기억들이 많았다. 교토는 일본문화를 곰곰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들이 많은 도시이고 오키나와는 일본이 미국·영국 등 강대국과 벌인 태평양전쟁(1939∼1945)의 격전지 중 하나이다. 태평양전쟁은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이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간다.

 

일본의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 현은 대만과 불과 100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는 섬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여기에서 숨을 거둔 민간인만 하더라도 24만 명이 되는데 이 주검들 속에는 우리 조선인들도 1만 명이 넘는다. 일제 식민지 시절, 모두가 강제로 끌려가 머나먼 나라 전쟁터에서 원혼이 돼버린 것이다. 오늘날, 이곳에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과 ‘히메유리평화기원자료관’이 세워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 두 개의 기념관은 평화교육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광주에 소재한 5·18기념재단과도 교류하고 있다.

 

오키나와와 교토. 그 중 교토에 자리한 ‘금각사’라는 절을 떠올리고 싶다. 이 절 이름은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두 차례나 오른 바 있는 미시마 유끼오(1925∼1970)의 소설 제목과 똑같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절은 3층짜리 누각으로 돼 있으며 2층과 3층이 금박으로 입혀져 있다. 저녁 무렵 석양을 받으면 아름다운 광채를 발휘한다는 이 절은 여러 차례 불에 탔는데 1950년 정신병을 앓던 한 사미승에 의해 방화, 연소돼버린다. 오늘날 방문객이 보고 있는 금각사는 1955년에 복원된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미시마 유끼오는 [금각사]라는 소설을 써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가 그린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핏빛’이 지배한다. 금각사에 불을 지른 사미승 미조구치가 우선 그렇다. 일본 전후문학을 대표한다는 미시마 유끼오, 그는 허무주의적이고 탐미주의적인 색체를 가미한 이 소설에서 극단적이고 파괴주의적인 아우라(징후)를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내가 당당하게 태양을 향해서 얼굴을 들 수 있기 위해서는 세계가 멸망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식의 무서운 독백을 늘어놓는다.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미시마 유끼오. 그의 천황주의(이것은 일본문화의 한 기류이기도 하다)는 그로 하여금 ‘다테노카이’라는 사병대를 만들게 한다. 이것은 일본의 극우적 이데올로기를 부추긴 청년들의 조직이 아니었던가. 결국 미시마 유끼오는 그의 또 다른 소설 [우국(憂國)]에서 그렸던 것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자아가 무너진 자살을 미화시킨다.

 

1970년 11월. 도쿄 중심가 육상자위대 본부에 들어가 일본이 연합군에 서약한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맺은 평화헌법을 뒤엎으라고 촉구”하는 발언을 한 뒤 스스로 배를 가른다. 다테노카이 추종자가 그의 목을 치게 하여 할복자살의 수순을 밟는다. 미시마 유끼오. 그래서 그의 문학과 죽음이 지금도 눈에 거슬린다. 한편 그의 비뚤어진 천황주의 혹은 국수주의가 되살아나 한국의 섬 독도를 일본의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