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광주에서만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시 광주 지역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지역 중의 하나였습니다. 1963년 대통령선거에서 다른 지역보다 박정희에 대한 지지가 높았지만, 박정희정권 하에서 광주는 산업화는 물론 정치권력의 소외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광주지역에서는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맞서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민청학련, 긴급조치 철폐투쟁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광주 사람들은 유신체제의 종말과 함께 민주화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더욱 뜨거웠습니다.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김대중 등)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신군부는 전국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전쟁 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광주는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었으며, 신군부 내에 광주지역을 대변할 만한 사람이 없어 희생양으로 삼기 쉬웠습니다. 이에 신군부는 광주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무력화시키려 했지만,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광주에서는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신군부의 권력찬탈 시도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신군부는 광주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고 폭도들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을 학살하는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때, 타지에서 이 소식을 접한 민주화운동세력들이 몰래 광주로 들어와서 항쟁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오지 못한 사람들은 각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가까운 전남·북 지역에서는 많은 피해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